2025년 7월 18일, 미국의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는 ‘지니어스 법(GENIUS Act)’에 공식 서명하며, 세계 금융 질서의 중심축을 뒤흔드는 중대한 법률을 탄생시켰다. 표면적으로 이 법은 ‘스테이블코인의 제도화’라는 기술적 개혁이지만, 그 실질은 디지털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통화 패권을 확립하려는 미국의 전략적 포석이다. 이 법은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를 공고히 하기 위한 ‘디지털 금본위제’라 불릴 만큼, 달러를 스테이블코인을 통해 암묵적 ‘디지털 자산’으로 재정의하는 획기적인 시도라 할 수 있다.
이 글은 지니어스 법이 담고 있는 의도, 구조, 그 법률이 암시하는 정치·경제적 패러다임 전환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1. 디지털 시대의 금본위제: 달러와 스테이블코인의 새로운 동맹
지니어스 법은 단순한 암호화폐 규제 법안이 아니다. 그 핵심은 미국 달러를 담보로 하는 스테이블코인에 대해 미국 정부가 제도권 내 보증을 제공한다는 데 있다. 이는 곧 “달러로 교환할 수 있는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국가 차원의 신뢰를 부여하겠다는 의미이며, 이는 1970년대 금본위제와 유사한 구조를 갖는다.
금본위제는 국가가 보유한 금만큼만 화폐를 발생하고, 그 금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통화가치를 유지하는 체계였다. 하지만 지니어스 법 아래에서 미국은 ‘금’ 대신 ‘자국 국채’를 기반으로 스테이블코인에 신뢰를 부여하며, 이를 통해 디지털 공간에서의 달러 패권을 공고히 하려 한다.
이것은 명백히 “디지털 금본위제”라 할 수 있으며, 막대한 금을 보유하지 않아도 세계가 신뢰하는 통화를 지속 가능하게 하는 미국식 지혜이자 지배 전략이다. 이제는 ‘채권’을 통해 세계의 디지털 거래를 장악하고, 전 세계의 자산이 미국 국채로 흘러들게 만드는 구조를 설계한 것이다.
2. 트럼프의 디지털 통화 전략: 대중주의와 기술 패권의 결합
트럼프 대통령은 암호화폐, 특히 비트코인을 ‘자유와 반권력의 상징’으로 포장해 왔다. 그는 선거 캠페인에서부터 암호화폐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고, 개인이 스스로 디지털 자산을 보관할 수 있는 권리를 헌법적 차원에서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지니어스 법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읽을 수 있다. 이는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발행을 공식 금지하는 조항을 담고 있으며, 비트코인에 대한 자본이득세를 폐지하고, 채굴 산업을 육성하는 방안도 병행되고 있다. 일반 시민들, 특히 기존 금융 시스템에서 소외되어 왔던 젊은 세대와 ‘탈중앙화’에 열광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조치가 국가권력으로부터의 해방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법은 ‘탈중앙화’를 표방하면서도, 결국은 미국 정부의 재정 기반을 강화하고 국채 수요를 높이며, 디지털 금융 환경 속에서도 ‘국가 주도의 질서’를 구축하는 데 집중되어 있다. 이는 자유의 외피를 쓴 또 다른 형태의 중앙집중적 전략이며, 트럼프는 이 딜레마를 정치적 수완으로 활용하고 있다.
3. 왜 미국은 스테이블코인에 주목했는가: 금융 구조의 전략적 전환
미국의 지니어스 법 통과 배경에는 몇 가지 긴박한 동기가 숨어 있다.
첫째, 미국의 재정적자 부담이다. 미국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급증한 정부 지출과 금리 인상으로 인해 막대한 재정적자와 국채 발행에 직면해 있다. 전통적으로는 중국, 일본 등이 미국 국채를 대량 매입했지만, 최근에는 이들 국가조차 미국 국채 보유 비중을 줄이고 있다. 이 공백을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들이 채우게 되면, 미국은 국채 금리 상승 압력을 완화할 수 있고, 안정적 재정 운영이 가능해진다.
둘째, 결제 인프라의 노후화 문제다. 미국의 결제 시스템은 1970~80년대 기술에 기반하고 있어, 이미 디지털 결제 선진국(예: 중국, 유럽)에 비해 뒤처져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스테이블코인은 빠른 국경 간 결제 수단으로 기능할 수 있으며, 이 법은 미국을 다시 결제 기술의 중심으로 부상시키기 위한 포석이다.
셋째, 암호화폐 기술의 탈미국화 방지다. 지금까지 규제 불확실성으로 인해 많은 암호화폐 기업이 싱가포르, 두바이, 스위스 등으로 본사를 옮기고 있었다. 지니어스 법은 미국 내에 명확한 규제 틀을 마련해 이들을 다시 끌어들이려는 전략적 법률이다.
4. 암호화폐 시장에 미치는 파급력: 비트코인과 리플의 수혜
지니어스 법은 단순히 법제화로 끝나지 않는다. 이는 암호화폐 시장의 구조를 근본적으로 재편한다. 특히 스테이블코인과 연계된 주요 자산, 예컨대 비트코인(BTC)과 리플(XRP)은 직접적인 수혜를 입게 될 가능성이 높다.
비트코인은 변동성이 큰 특성상, 그동안 결제 수단으로는 부적합하다는 평가를 받아왔지만, 스테이블코인의 보급으로 인해 거래의 유동성과 신뢰성이 높아지면서 ‘디지털 금’이라는 서사의 설득력이 더 커진다.
**리플(XRP)**은 이미 RLUSD라는 자체 스테이블코인을 운영 중이며, 이 법이 통과됨에 따라 해당 자산이 공식적인 금융기관 결제 수단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커졌다. 또한, 리플이 오랫동안 SEC와 벌여온 ‘증권성 논란’도 이 법의 명확한 규제 아래에서 해소될 가능성이 커졌으며, 리플의 사업 확장성과 신뢰도는 한층 높아질 전망이다.
5. 부정적 시선과 철학적 충돌: 탈중앙화의 배신인가?
모든 제도화가 긍정적인 결과만을 낳는 것은 아니다. 지니어스 법은 탈중앙화의 이념을 핵심으로 삼았던 블록체인 철학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이 법은 본질적으로 ‘정부 허가 없이 발행된 스테이블코인’을 제도권에서 배제하며, 담보자산 보유, 회계 감사, 자금세탁 방지법 등 까다로운 조건을 부과한다. 이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개방적 금융 생태계’라는 블록체인의 철학을 훼손할 수 있다.
또한, 준비금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중소 발행 사들은 시장에서 밀려나고, 결과적으로 소수의 대형 금융기관이 스테이블코인을 독점하게 될 우려도 있다. 이는 오히려 ‘금융 민주화’가 아니라 ‘금융 집중화’를 초래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6. 7월 18일의 역사적 의미: 환호인가, 착시인가?
2025년 7월 18일, 미국은 또 한 번 세계 통화 질서를 주도할 수 있는 도구를 손에 넣었다. 겉으로는 ‘암호화폐의 제도화’라는 환호가 들리지만, 실상은 미국의 금융 패권이 다시 한번 연장된 순간이기도 하다. 트럼프를 지지한 대중들은 마치 자신들이 이긴 것처럼 기뻐했지만, 실제로 이 법은 ‘통치의 논리’를 디지털로 재현한 장치일지도 모른다.
암호화폐가 외쳐온 자유와 해방의 메시지는, 이제 법과 규제라는 이름 아래 선택적으로 수용되고 있으며, 그 최종 수혜자는 ‘정부’ 일 가능성이 높다.
지니어스 법은 미국의 천재적인 생존 전략이다
지니어스 법은 단순히 스테이블코인을 규제하는 법이 아니다. 이는 미국이 디지털 시대에도 기축통화로서의 달러를 유지하기 위해 고안한 ‘제2의 브레턴우즈 체제’다. 금 대신 국채를 담보로, 주권 대신 코드로, 세계를 다시 달러의 우산 아래 두려는 천재적 전략이다.
‘지니어스(GENIUS)’라는 이름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미국은 또 한 번 세계 경제의 주도권을 선점하려 하고 있으며, 우리는 그 거대한 변화의 첫날을 지금 막 통과하고 있다. 앞으로 7월 18일은 ‘디지털 달러 시대의 개막일’로 기억될 것이다. 그것이 희망이든, 착시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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