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튤립버블 과 미디어

by 루트인포 2024. 6.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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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버블을 얘기하면 항상 언급되는 대표적인 사건이 17세기 네덜란드에서 일어났던 “튤립파동"이 대표적이다. 16세기 스페인의 지배를 받던 네덜란드가 독립전쟁(1568년)에서 승리 후 공식적인 독립국(1648년)으로 인정된다.

암스테르담이 금융도시로서 많은 자본이 들어오게 되면서 1609년 세계 최초의 증권거래소가 생기게 된다. 여기에 독일에서 벌어진 30년 전쟁은 주변국들의 직물 산업에 큰 타격을 주면서 반사적으로 네덜란드 경제에 큰 이득을 가져다준다. 금융과 제조 산업의 호황을 동시에 누리게 된 것이다.

 

이러한 자본 과잉 상태는 새로운 투자처를 찾게 되었고 이 중 하나가 튤립 이였다. 튤립은 네덜란드에서 부의 상징으로 자리 잡고 있었고, 희귀품종에 한해서 높은 금액으로 거래가 이루어 지고 있었다. 이러한 희귀품종에 대한 투자는 1636년으로 시작해 1637년 1월까지 지속되었으며 튤립 한 뿌리에 약 한화 3000만원 이라는 거액으로 거래가 되었다. 이러한 추세는 2월 들어 급락으로 이어졌고 4개월 만에 최고점에서 99퍼센트까지의 손실을 기록한다. 여기까지가 우리가 알고 있는 튤립파동의 일반적인 진행 과정이다.

 

이후 이로 인한 자산가들의 파산과 네덜란드 경제의 쇠퇴를 얘기하면서 비정상적이고 과열된 경제 상황을 얘기하는 튤립버블이라는 용어가 생겨나지만, 이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봐야 한다. 

당시 네덜란드 수공업자들의 1년 연봉은 한화로 23만원 정도로 여겨지는데, 한뿌리에 3000만원인 튤립이 많은 사람들에게 거래됐다고 보기 어려우며, 소수의 엄청난 부자들 사이에 이루어 졌던 거래이고, 가격급락을 충분히 견딜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단지 운 없는 몇몇 극소수 인원들이 피해를 보았고 이것이 네덜란드 경제에 영향을 주었다는 사실도 찾을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튤립버블"이라는 용어가 탄생하게 된 거품경제의 대표적인 예시가 되었을까? 가장 큰 원인은 미디어의 해석이다. 17세기에 일어난 튤립 가격의 드라마틱한 급락은 18세기 미디어 관련자들에게 좋은 이야기의 소재가 될 수가 있었다. 대표적으로 18세기 작가 Charles Mackay가 펴낸 “비상한 대중적 망상과 군중의 광기"에서 이 사건이 과장되게 표현되면서 튤립버블이라는 용어가 생겨났고, 많은 경제학자들이 이를 인용하면서 사실적인 사건으로 대중들에게 인식이 된다. 영화화 된 1999년 작 소설 “튤립피버” 도 이러한 인식을 근거로 했다고 볼 수 있다.

 

많은 경제 관련 전문가들은 튤립버블을 사람들의 맹목적이고 비효율적인 투자 행태에 경각심을 주는 방아쇠로써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예시로 현재 가장 많이 언급되고 있는 비트코인에 대해서 우리는 어떤 결말이 나오게 될지 모른다. 여전히 비트코인은 사람들의 광기와 새로운 투자 매체 사이를 맴돌며 많은 미디어의 관심을 받고 있다. 미디어의 관심이, 그 역활이 어떤 용어를 새로이 사람들에게 각인시키게 될지 시간이 지나 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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