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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 세계 대공황

by 루트인포 2024. 7.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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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에서 1930년대 후반까지, 전 세계적으로 들이닥친 경제공황이라 불리는 경제침체는 특정 몇 가지 원인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아마도 이 경제공황은 전 세계가 개별적으로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 첫 번째 신호가 될 것이다.

1900년대 초반 산업혁명과 강국들의 식민지 사업 확대, 1920년대 미국의 라디오, 영화와 신문발행이 가져온 미디어 혁명은 어떠한 불안감 없이 전 세계의 강국들에게 미래에 대한 자신감과 기대감을 끝없이 갖게 해주었다.

 

1776년 애덤 스미스의 “이기적 행동이 사회적 이익을 실현한다”. 라는 문장으로 대변되는 보이지 않는 손이라 불리는 자유 시장 경제의 개념은 근대사의 시작을 알렸고, 인류사에 가장 큰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이렇게 형성된 경제발전은 1929년 영국 최대 투자자이자 기업인이었던 클래런스 찰스 해트리(Clarence Charles Hatry)의 금융사기와 부도로 인한 구속으로 같은 해, 10월 24일과 29일, 이른바 검은 목요일 과 검은 화요일로 불리는 미국 월스트리트의 주가 폭락을 일으킨다. 세계 1차대전(1914-1918)으로 인해 승/패전국들의 경제 상황은 파산에 이른 상황이었고, 여기에 미국의 시장 불안을 시장경제에 맡기고 보호무역 등의 미국 정부 대처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게 되면서 “세계 대공황"이 시작된다.

 

세계 대공황 시기 미국의 GDP는 40%가 감소하였으며, 대공황 3년 만에 시가총액의 89%가 사라졌다. 이에 따라 미국은 유럽 투자금을 회수하면서 유럽 역시 기존 GDP의 75%가 사라진다. 이 시기 유일하게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진행하고 있던 소련이 경제성장에 성공하고 있었기에 미국인 10만 명 이상이 소련으로 이민을 가게 되었고 많은 국가가 소련을 모델로 공산주의를 선택하게 된다.

이미 삶이 무너지고 민족주의의 부활과 정치적 극단주의로 사회적갈등을 겪고 있는 유럽 국가들 사이에 전체주의가 정부를 구성하게 되는 시기이며, 결국 독일, 이탈리아, 그리고 일본을 주축으로 하는 세계 2차대전(1939-1945)이 발생하게 된다.

 

세계 대공황은 정부 시장개입의 필요성을 알린 존 메이너드 케인스의 케인즈주의가 중요한 경제이론으로 받아들여지게 되고 대공황을 이겨내는 데 큰 힘이 된다. 이와 함께 미국 루스벨트 정부가 시행한 뉴딜정책은 공공산업을 통한 일자리 창출, 금융시스템 안정화를 위한 금융규제, 보호무역을 바탕으로 차츰 경제회복을 달성하게 된다. 하지만 경제공황을 완전히 벗어나게 된 계기는 세계 2차대전이었다. 전쟁으로 인한 군수 물품 산업이 호황을 이루며 극심했던 실업률이 1%로 바뀌는 동시에 넘쳐나는 금과 달러로 전쟁 종료 후 미국이 세계 초강대국이 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많은 원인이 하나의 시기에 겹치면서 상상할 수 없었던 고통을 전 세계 정부에 안겨준 세계 대공황은 지금까지도 많은 학자로부터 연구 대상이 되고 있고 인류 경제사에서 비슷한 경제침체가 올 때마다 하나의 교과서처럼 불황 타개의 실마리를 제공하는 사건으로 기억되고 있다. 새로운 혁명 뒤에 그것이 번영으로 끝을 맺지 않고 불행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 또한 기억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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